아카데미에 들어온 뒤, 팀으로 일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중 하나는 사이드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회의를 반복하면서 생긴 생각이다.
처음에는 좋은 팀을 꽤 단순하게 생각했다. 분위기가 좋고, 서로 해야할 말을 명확하게 잘 할 수 있는 팀이 좋은 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요소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팀에서 심리적으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분명 중요하다.
다만 실제로 팀을 만들고 회의를 해보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좋은 분위기가 있어도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있으면 팀은 엇갈린다. 회의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각자 작업을 시작하면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단어가 가리키는 장면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팀은 같은 의견을 갖는 팀이 아니라, 같은 맥락을 잃지 않는 팀에 더 가깝다.
이번 글에서는 사이드 프로젝트 팀을 운영하며 내가 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특히 포스트잇, 합의록, 100% 동의라는 원칙이 단순한 회의 도구가 아니라 팀의 맥락을 맞추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을 기록해두고 싶다.
회의 중 바로 끼어들지 않는 연습
사이드 프로젝트 팀에서 팀 회의를 하며 가장 좋았던 방식 중 하나는, 질문이 떠올라도 바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말하는 도중에 질문이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일단 포스트잇에 적었다. 그리고 상대의 말이 끝난 뒤, 그 질문을 다시 꺼내 연결했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단순히 회의를 깔끔하게 진행하기 위한 습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회의를 반복할수록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방식은 질문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면서도,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맥락을 끝까지 듣기 위한 장치였다.
질문을 바로 던지면 대화가 빨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궁금한 것을 바로 확인하고, 떠오른 생각을 바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회의에서 바로 질문하고 바로 반응하는 것이 적극적인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 회의에서는 그 적극성이 오히려 흐름을 끊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가 아직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있는데, 중간에 다른 질문이 들어오면 대화의 중심이 이동한다. 질문 자체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지금 다루어야 할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포스트잇은 단순한 브레인스토밍 도구가 아니었다. 내게는 대화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장치에 가까웠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실제로 좋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이 그 아이디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놓일 자리를 정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지금 논의할 것과 나중에 볼 것을 나누는 일
한 번은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솔루션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로웠고, 나중에 다시 볼 가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아직 문제를 더 깊게 보고 있어야 했다.
그때 바로 솔루션 토론으로 넘어가면 회의는 더 활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디어가 나오고, 사람들이 반응하고, 구체적인 기능이나 방향을 상상하면 회의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확인하려고 했는지는 흐려질 수 있었다. 아직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솔루션으로 넘어가면, 팀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문을 건너뛰게 된다.
그래서 그 아이디어를 막기보다, 팀 스페이스의 아이디어 모음에 넣어두고 지금은 문제를 더 집중해서 보자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생기면 다시 꺼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이 내게는 꽤 중요하게 남았다.
이전에는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바로 이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으로 일할 때는 좋은 아이디어를 바로 다루는 것보다, 지금 팀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잃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팀의 현재 논의를 끌고 가게 두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합의록을 남겼다. 합의록에는 결정된 것과 다음 액션 아이템을 적었다. 누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뿐 아니라, 우리가 왜 그렇게 정했는지도 가능한 한 남기려고 했다.
이것도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팀이 같은 맥락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기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 중에는 모두가 이해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각자가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같은 말을 들었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때 합의록은 우리가 그때 무엇을 결정했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합의록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호함을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100% 동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 팀을 만들 때 내가 중요하게 두고 싶었던 원칙이 있었다. 모든 팀원이 100% 이해하고 동의한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Apple의 업무 방식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영상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은 대목이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누군가가 포기하는 것이 아닌, 좋은 방향을 찾을 때 까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Apple식 협업의 핵심이라는 점 이었다. 나는 이 원칙을 사이드 프로젝트 팀에서도 꼭 실험해 보고 싶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팀은 회사가 아니다. 누군가가 일을 시키고, 다른 사람이 수행하는 구조로 가면 오래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카데미 안에서 만드는 팀이라면 결과물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배우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애플에서는 실제로 100% 합의라는 의사소통 방식을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티브 잡스는 만장일치를 팀의 전체를 밑으로 내려버려 그저 그런 프로덕트로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 말에 너무 동의한다. 내가 이 팀에서 하고 싶었던 의사소통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여기서 말 하는 100% 합의는, 모두가 끝까지 토의와 토론, 언쟁을 오가는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단 한명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 것.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는 팀이 되고자 했다. 100% 합의는 ‘누군가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나 모두가 이야기한 끝에 최적의 방향성을 찾게 된 순간, 모두가 그것을 동의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논쟁하자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팀을 확정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과물은 마일스톤일 뿐이고,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이 팀의 목표는 좋은 팀과 좋은 협업을 배우는 것이다. 중간에 팀이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물론 모두가 바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물이 목표가 아니라면 무엇을 향해 가는지, 모두가 100% 동의해야 한다면 어떻게 속도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 원칙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완전히 이해하고 동의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팀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팀이 가고싶었던 방향성은 빠르게 아무거나 결정하는 팀이 아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하고 제대로 된 결정을 하는 팀 이었다.
그리고 회의를 반복하면서, 이 원칙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던 팀원들도 이 원칙이 주는 의미를 더 명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100% 동의는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갖게 만드는 원칙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각자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해한 상태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원칙에 가까웠다.
중요한 것은 침묵을 동의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팀이 정했으니까 한다”는 상태는 겉으로는 빠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호함은 다시 비용으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작업하고, 누군가는 같은 결정을 다르게 이해하고, 누군가는 질문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다.
그런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속도는 실제 속도가 아닐 수 있다.
겉으로는 빨리 앞으로 간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다시 돌아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면 그건 빠른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초반에 맥락을 맞추는 시간이 팀 전체의 속도를 지켜주는 경우도 있다.
좋은 분위기보다 중요한 것
이번 경험을 통해 좋은 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좋은 팀은 단순히 분위기가 좋은 팀이 아니었다. 불편한 말을 피하는 팀도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갖는 팀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좋은 팀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지금 무엇을 논의하고 있는지 함께 알고 있는 팀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무엇을 나중에 다시 볼 것인지,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맞추는 팀이다.
포스트잇, 합의록, 100% 동의 같은 장치들은 회의를 느리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팀이 같은 맥락 위에 서 있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물론 아직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나는 팀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고, 좋은 협업이 무엇인지 계속 실험하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좋은 팀은 의견이 항상 같은 팀이 아니다.
좋은 팀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도 같은 맥락을 잃지 않는 팀이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협업은 속도보다 먼저 맥락을 맞추는 일이다.